집에 들어가면서 TV 를 켜고 집을 나오면서 TV 를 끄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남편,,,,
식사를 마치고 나면 버릇처럼 소파에 누워 TV 를 보다 잠들기 까지 있는 남편,,,
많은 아내들이 경험한 일일 것이다.
얼마전 세사람이 모여 교제를 하던중 .한 자매는 이런 말을 하였다..
“ 전에 그런 남편이 너무 싫고 미워서 그때마다 속이 뒤집어 지고 열을 받고 했는데 어느날도 그런 남편을 보고 있다가 문득 스쳐가는 깨달음이 (TV 보는게 그렇게 죄냐? TV 보는 남편을 보고 미워하는 게 더 죄가 아니냐?) 그 후로는 그런 남편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고 기도하게 되었어요,,
우리는 죄를 남의 모습속에서 꺼내어 보길 좋아하는 면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조금 다른 각도이지만 마태복음 말씀중에는 죄많은 이세대를 탓하기 보단 그 죄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더욱 큰 죄임을 깨닫게 해 주는 말씀이 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데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마11:17).
예수님의 여러가지 이적들과 말씀들을 목격하고도 자만과 무관심으로 인해 회개하지 못하는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또한
베드로 전서 2장 9절의 말씀에는 우리 각자를 향하여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 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대로라면 제사장된 우리의 사명은 다른사람의 죄를 함께 지고 주님 앞에가서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오늘 우리들은 나혼자만 예수를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남이야 옆에서 쓰러지거나 말거나, 죄 속에 들어가거나 말거나..아프거나 말거나 죽거나 말거나.. 그건 그사람의 일이라고 무 관심하게,또 무감각하게 스쳐 지나간다..
내 모습이다..
그렇다고 예수를 믿는자의 삶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땅을 고치리라..(대하 7:14)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 곧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 이 세대의 악함과 이 땅의 황무함을 보는 우리들이 깨어 일어나서 주위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역대하 7:13 메마른 가정..
수고한데로 먹지 못할 때
병들었을때..
이런때.. 이러할때 사람에게 가지말고 내게와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다윗이 사울(사람)을 두려워 하여 가드로 갔을때 그는 환란을 당하였으나 아둘람 굴로 들어가서 주님께 부르짖을때 그를 필요로 하는 400 여명의 사람이 찿아온것을 우리는 본다.. 사람에게 가지말고 내게와서 기도하라..
역대하 20장에는 여호사밧의 기도가 나온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더불어 아람과 싸울 때 아합왕이 죽지 않고자 머리쓰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죽는 모습을 보게 된후 모압과 암몬이 여호사밧을 치러 오게 되자 여호사밧은 12절에서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여호와를 의지하게 된다.
주만 바라 보나이다..
이방법, 저 방법도 취하면서 주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거 하면서 주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주만 바라본 여호사밧을 통해 온전히 영광 받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의 얼굴 만 구하자...
닫으면 열자 없고 열면 닫을 자 없는 열쇠...기도하는자에게 주심을 믿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니이다 .라는 고백위에 세워진 교회..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우리 각자에게 이 천국 열쇠를 주신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의 방향은 어디인가?
각 개인과 가정, 교회와 이웃 그리고 나라와 세계를 향하여 주님의 뜻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기 원하여 찿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되어 그 부르심에 반응하는 사람으로 주님께 쓰임 받을 것이다..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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